제작연대, 화기명, 무게, 감독자, 장인 명문 확인…보물급 가치 주목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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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병태 시장이 2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나주 금성산 발견신고유물 황자화통 언론공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코리아 이슈저널=김종오 기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에 위치한 금성산에서 우리나라 화약무기의 초기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국내 현존 최고(最古)의 화약무기 ‘황자화통(黃字火筒)’이 발견됐다.
제작 시기와 화기명, 무게, 감독자, 장인까지 확인할 수 있는 명문과 명확한 출토지를 갖춘 유물로 한국 화기 발달사는 물론 금성산의 군사적·역사적 가치를 밝힐 중요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나주시(시장 윤병태)는 금성산에서 발견된 소형 화약무기 ‘황자화통’에 대한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의 조사·분석 결과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됐다고 21일 밝혔다.
황자화통은 지난 2023년 11월 나주시 경현동 금성산성 주변에서 발견됐고 당시 나주시의 금성산 등산로 개설을 위한 육군의 지뢰탐지 과정에서 금성산 9부 능선 암벽 단애 하부 표토 약 10㎝ 아래에 묻혀 있던 유물이 확인됐다.
발견 이후에는 오염물 제거를 비롯해 컴퓨터단층촬영(CT), 엑스레이(X-ray), 주사전자현미경(SEM-EDS), 금속현미경, 납동위원소 분석 등 다양한 과학적 조사가 이뤄졌다.
연구진은 과학분석 결과와 함께 유물에 새겨진 명문과 화통의 형태, 발견 장소의 역사적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유물의 성격과 제작 시기를 분석했다.
황자화통은 구리와 주석, 납으로 제작한 청동 주조품으로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의 소형 화기로 발사체가 나가는 총부리와 화약을 넣는 약통, 나무 손잡이를 끼우는 모병(冒柄)으로 구성돼 있으며 개인이 휴대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유물에는 제작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가 글자로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를 더한다.
모병 부분에는 6행 27자의 명문이 음각돼 있으며 ‘정사년 12월에 황자화통을 만들었고 무게는 1근 14량이며 제작 감독자는 녹사 안휴보, 장인은 석’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부리에 별도로 새겨진 ‘팔(八)’자까지 포함하면 유물에서 확인되는 글자는 모두 28자다.
하나의 화약무기에서 제작 시기와 화기명, 무게는 물론 제작을 감독한 사람의 관직과 이름, 실제 제작에 참여한 장인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유물로 평가된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제작연대다.
명문에 새겨진 ‘정사(丁巳)’는 현재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 또는 조선 세종 19년인 1437년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어느 연대로 확정되더라도 현재 보물로 지정된 총통류보다 최소 118년 이상 앞선 유물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화약무기와 금속주조 기술의 역사를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화약무기류 가운데 제작연대가 확인되는 가장 이른 유물은 1555년 제작된 천자총통(天字銃筒·1555년)이다.
황자화통이 1437년에 만들어졌다고 보더라도 이보다 118년 앞서며 1377년 제작으로 확인될 경우 우리나라 화약무기 실물 자료의 역사를 100년 이상 더 앞당기는 중요한 유물이 된다.
출토지가 명확하다는 점도 황자화통의 가치를 높인다.
금성산은 호남을 대표하는 나주의 진산이자 영산강 유역을 조망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후삼국시대에는 왕건과 견훤 세력이 맞섰던 지역이며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머물렀고 1270년 삼별초의 나주 공격 당시에는 금성산성을 중심으로 치열한 항전이 펼쳐진 역사적 공간이다.
금성산신은 고려 충렬왕 3년인 1277년 정녕공에, 조선 태조 2년인 1393년에는 호국백에 봉해질 만큼 국가적 제사의 대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번 황자화통의 발견은 이처럼 오랫동안 영산강 유역의 군사·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해온 금성산과 금성산성의 역사적 성격을 실물 유물을 통해 새롭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황자화통의 구조와 재질 역시 초기 화약무기 제작기술을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과학분석 결과 약통은 둥근 형태이며 약통에서 총구 방향으로 폭이 넓어지는 구조를 갖춘 것으로 조사됐으며 화약 폭발 과정에서 화통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석 함량을 조절한 제작기술도 확인돼 당시 금속주조와 화기 제작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1975년 쌍자총통(雙字銃筒)을 시작으로 지자총통(地字銃筒), 세총통(細銃筒) 등 화약무기류 14건, 세부 수량 16점이 보물로 지정됐다.
황자화통은 명확한 출토지와 이른 제작 시기, 제작 주체와 무게까지 확인할 수 있는 명문을 갖추고 있어 보물급 문화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1377년과 1437년 중 제작 시기를 하나로 확정하려면 고려 말∼조선 초에 제작된 다른 화약 무기류와 검증해야 하지만 현재 비교할 유물이 마땅히 없는 상황으로 제작 시기를 좁히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할 전망이다.
한편 황자화통은 9월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국민에게 선보이고 오는 12월에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에도 출품해 우리나라 화약무기 발전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유물로 소개할 예정이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우리나라 화약무기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귀중한 유물인 황자화통이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에서 발견된 것은 나주가 간직한 역사문화자원의 깊이와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뜻깊은 일”이라며 “이번 발견을 계기로 금성산과 금성산성이 지닌 군사적·역사적 가치가 더욱 널리 알려지고 황자화통이 우리나라 화약무기의 초기 역사를 밝히는 소중한 국가유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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