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1919년 그날, 역사를 만든 사람들… 3·1 운동의 결정적 순간들

최윤옥 기자 / 기사승인 : 2026-03-01 00: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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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족적 비폭력 저항의 시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태
세계로 뻗어 나간 자유의 불꽃
우리가 기억해야 할 '기미독립선언서'
▲ 대한민국 태극기모습

[코리아 이슈저널 = 최윤옥 기자] 1919년 3월 1일, 한반도 전역에 울려 퍼졌던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이 오늘로 107주년을 맞이했다. 단순히 쉬는 공휴일을 넘어, 삼일절이 우리 역사와 현대 사회에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짚어봤다.

 

​3·1 운동은 종교계와 학생, 노동자, 농민 등 계층과 이념을 초월해 온 국민이 하나로 뭉친 최대 규모의 항일 독립운동이다. 특히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제의 폭압에 맞섰다는 점에서 세계 평화 운동사에서도 높게 평가 받고 있다.

 

​3·1 운동은 우리 민족에게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라는 자각을 심어주었다. 이 정신은 같은 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된 "법통"의 뿌리가 되었다.

 

​우리 민족의 저항은 우리만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았다. 3·1 운동의 비폭력 정신은 중국의 5·4 운동, 인도의 무저항 독립운동, 그리고 베트남 등 아시아 전역의 민족자결주의 운동에 거대한 영감을 주었다.

 

​삼일절의 핵심 문서인 기미독립선언서에는 단순히 일본에 대한 적대감만 담긴 것이 아니다.인류 평화와 공존의 가치, 민족의 자결권 주장, 미래 세대를 위한 정의와 인도주의 실현, 이러한 보편적 가치들이 담겨 있어, 100년이 지난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삼일절은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는 날인 동시에, 선조들이 꿈꿨던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우리가 잘 만들어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날이다.

 

107년 전 오늘,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위대한 역사를 썼다. 거대한 함성의 주역이었던 인물들과 긴박했던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3·1 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3·1 운동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주역들은 이름 없는 수많은 민초의 참여로 완성되었지만, 그 중심에는 방향타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있었다.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 학생으로 아우내 장터 만세 시위 주도했으며, '3·1 운동의 꽃', 옥중에서도 독립 의지 굽히지 않았다. 손병희 선생은 천도교 대표이자 민족대표 33인의 실질적 지도자로 독립선언서 인쇄 및 자금 지원 등 운동의 기틀 마련했다. 안창호 선생은 직접 현장에 없었으나, 상해에서 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이다. 3·1 운동의 정신을 체계적인 독립운동 역량으로 결집했다. 한용운 선생은 불교계 대표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 추가 작성했다. 

 

1919년 봄, 긴박했던 사건 일지를 다시 짚어본다. 3·1 운동은 단 하루의 사건이 아니었다. 거사는 치밀하게 준비되었고, 그 여파는 수개월간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1월 21일 고종 황제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퍼지며 민족적 울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장례일(인산일)인 3월 3일에 맞춰 거사를 계획했다. 

 

2월 8일은 동경 '2·8 독립선언'한 날이다. 일본 유학생들이 먼저 독립을 선언하며 국내 독립운동 세력에 거대한 자극을 줬다. 

 

3월 1일 오후 2시에 거사의 시작 점이다. ​태화관에서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스스로 경무총감부에 연락해 체포됐다.탑골공원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수천 명 모여 선언서를 낭독하고 시가 행진 시작했다. 

 

​4월 1일에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시위는 유관순 열사가 주도한 시위로, 지방 곳곳으로 만세 운동이 확산되는 기폭제가 됐다. 

 

​4월 15일 제암리 학살 사건은 일제가 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경기도 화성 제암리 주민들을 교회에 가두고 학살한 사건이다.  일제의 잔혹함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역사학자들은 3·1 운동이 가진 가장 큰 의의로 '민(民)의 성장'을 꼽는다. 왕조의 백성에서 근대적 '시민'으로 거듭난 변곡점이라는 분석이다.

 

안창호 선생이 강조했던 '실력 양성'과 유관순 열사가 보여준 '용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107년 전의 함성은 멈추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름 모를 이들이 흘린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 태극기를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이 어떠합니까. 오늘 하루, 태극기 게양을 통해 그날의 숭고한 정신을 기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날 그분들처럼 당신은 목숨 걸고 대한민국 만세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코리아 이슈저널 / 최윤옥 기자 bar00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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