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에 최초로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되어 도시 서울의 근간을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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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도시기본계획 '66 : 현대 서울을 만든 공간각본' 표지 |
[코리아 이슈저널=최준석 기자] '서울도시기본계획 ’66'은 목표연도를 1985년으로 계획인구를 500만으로 설정하여 서울시 공간구조와 시설의 분산배치를 구상한 최초의 도시기본계획이다. 1966년 대한국토계획학회에서 수립한 이후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까지 총 9번의 도시기본계획이 마련됐고, 미래 도시 서울의 향방을 결정짓는 지침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현재 도시 서울의 기틀이 된 1966년 도시기본계획을 조망하는『 서울도시기본계획 ‘66 : 현대 서울을 만든 공간각본』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된 지 60년이 되는 2026년을 맞이하여, 당시에 꿈꾼 서울 도시의 미래상이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현재와 비교하고, 그 유산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기획됐다. 서울의 도시 향방을 결정지었던 1966년 전후의 도시기본계획 준비과정과 갈등, 고민 등도 함께 들여다보았다. 서울도시기본계획은 발전된 선진도시로서 현대 서울을 만들고자 했던 모두의 열망이 모인 결정체였다.
연구에는 강난형 연구책임을 비롯하여 김기호, 엄운진, 양재섭, 정수인, 이승빈이 참여했다.
전쟁 후 서울의 급격한 인구증가와 더불어 1963년 서울의 행정구역 확장은 서울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계획의 필요성을 촉발했다. 또한 정치·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서울은 더 이상 단일한 도심만으로는 기능을 수용할 수 없었고, 다핵화 및 균형 발전이 중요 과제로 떠올랐다.
6·25전쟁 이후 급감했던 서울의 인구는 1953년 가까스로 100만 명을 회복한 뒤, 불과 10년 만에 세 배인 300만 명을 넘어섰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1963년에는 1949년에 비해 서울 시역을 약 4.5배로 대폭 확장했다. 그 결과 서울시는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도시를 관리할 수 없게 됐고, 급증하는 인구와 새로 편입된 광범위한 지역을 종합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장기적 도시계획의 수립이 절실한 과제가 됐다.
1962년부터 시작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추진되면서 국토계획을 통하여 전국에 공단과 공업도시 등을 개발하고, 이를 고속도로 등의 인프라로 연결하는 계획이 구상됐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정치·경제·산업 등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역할이 부여됐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을 재편성하여 도시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분담하고, 향후 서울의 성장에 맞는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기초 작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펼쳐졌다.
서울은 업무기능과 생활기능, 그리고 국가도시적, 지방행정적, 단일도시적 기능의 셋이 종합조화되어야 한다. 내일의 서울은 입법, 사법, 행정, 국방의 국정기능, 생산교역의 경제기능, 교육문화의 제 기능이 조화있게 분산된다.
'서울도시기본계획 ’66'의 수립은 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서울도시계획위원회 간의 협력과 조율로 이루어졌다. 계획의 핵심은 한강을 중심으로 한 다핵화된 도시구조를 설계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강남 개발과 한강 유역의 공업지역 설정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서울시의 ‘개발 공간인 강북과 계획 대상인 강남의 공간구도’는 건설부(중앙도시계획위원회)와 서울시(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간의 복합적인 주도권 경쟁 속에서 조정과 갈등을 만들었다. 첫 도시기본계획은 궁극적으로 ‘국가경제개발 과정에서 직면한 생산도시 서울을 어떻게 계획할 것인가’ 하는 도시문제 대응의 산물로 볼 수 있다.
특히 서울의 공업지역계획은 수립 과정을 통해 ‘경인 중공업, 서울 경공업’이라는 공간구도로 확정됐다. 서울시의 주요 공업지역은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주요 지천 주변으로 분배됐고, 이는 효율적인 교통망과 산업지구의 개발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한강은 도시의 경계에서 중심으로 위상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발전 가능지로 주목받게 됐다. 즉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한강 주변은 교통, 산업, 주거 개발 등 다양한 기능을 부여받게 됐다.
'서울도시기본계획 ’66'은 토지이용계획과 가로망계획 등의 물적 계획 외에 인구·경제·산업 등 사회·경제 부문을 포괄하는 종합계획이자. 20년 후 도시의 미래상과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장기계획이다. 1966년에 제시한 서울의 미래상이 9번 수정되면서 현대 서울의 초석이 만들어졌다.
『서울도시기본계획 ’66』은 1960~1970년대 국가의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생산도시 서울을 지향했다. 이에 따라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지역에는 업무·상업 기능을, 그 주변의 전이지대와 외곽지대에는 주거 기능을, 그리고 한강 변을 따라 광범위한 공업지역을 지정하여 제조업 기능을 확충하고자 했다.
서울의 방사환상형 교통망은 『서울도시기본계획 ’66』을 통해 기본골격이 만들어진 것이며, 대중교통체계의 근간이 되는 지하철망도 이때 처음으로 구상된 것이다. 상하수도 등 시민생활의 토대가 되는 기초생활 인프라와 장래 필요한 대규모 운동장 부지, 도서관 등 생활편의시설 확충에도 기여했다.
서울 외곽에는 개발제한구역을 설정하여 무분별한 시가지의 확산을 억제했다. 한편 도심재개발을 통하여 사대문 안 도심부를 현대적인 중심업무지구(CBD)로 변모시키는데도 영향을 끼쳤다.
1966년 8월 15일 광복 21주년 기념 '8·15 도시계획 전시회'가 시청광장에서 개최됐다. 시민들에게 서울의 미래 비전을 전달하는 중요한 장이었으며, 도시계획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촉진시켰다. 도시계획에 관한 전무후무한 전시회로 이번 연구를 통하여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전시의 구성과 전시공간을 재현했다.
1966년 4월 서울시장에 취임한 김현옥은 ‘도시계획’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전시회를 통해 ‘새서울계획’, ‘동부서울 개발계획’, ‘도시계획선 해제’를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전시회에서는 김현옥과 서울시 입장의 도시계획 및 개발사업이 주로 전시됐으며, 서울시는 전시회를 통해 시민들에게 도시계획사업들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했다.
저변에는 개발사업에 대한 수익자부담금을 확보하려는 의도와 공공에서 추진하는 건설사업의 부담을 해결하려는 김현옥의 전략이 숨겨져 있었으나 전문가들은 ‘전시행정’과 ‘구체성이 없다’는 등을 이유로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무궁화 모양을 한 새서울 백지계획이 전시회의 핵심 부분에 배치됐다. 인구 100만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로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삼핵으로 구성된 개념도시(안)이었다.
전시회 이후 시민들은 새로 편입된 지역의 측량정보와 도시계획이 그려진 지도들을 확보할 수 있었고, 서울의 ‘현실’과 ‘계획’을 손에 쥐고 누구나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전시회의 숨은 의도는 ‘동부서울’의 일부인 중곡동 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구체화되어 주민들이 주도하는 민간사업으로 이루어졌고, 서울시는 공적 투입 없이 토지 개발을 실현할 수 있었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2026년 8월 '서울도시기본계획 ’66' 관련 기획전시도 계획하고 있다”며 “1966년에 꿈꾼 도시의 미래상이 현재 2026년 서울에 어떻게 적용됐는지 살펴보면서 다시 서울의 미래 전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한 '서울도시기본계획 ’66 : 현대 서울을 만든 공간각본'은 서울시청 지하 1층에 위치한 서울책방 매장과 서울역사박물관 내 뮤지엄 숍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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