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K-인터뷰]35년 외길 이완식 고구려문물연구소장… "고구려의 진실, 유물이 말한다"

최윤옥 기자 / 기사승인 : 2026-02-05 22: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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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복원 위해 사재 털어 고구려문물 수집,독학으로 해독,
7년 집념으로 일궈낸 민간 연구소 개설로 박차
일본,중국에 왜곡된 우리 역사 바로잡기 위해 싸우다.
▲ 이완식 고구려문물연구소장의 모습 (본인제공)

[코리아 이슈저널 = 최윤옥 기자]  "이거 봐라 글을 이제 이해를 하니까 이게 만약에 흩어지면 고구려 사전이 찢어져서 터트리면 나중에 이거 모을 수가 없는 거다. 각자 학자마다 다른 주장을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진짜 이거 다 모으자 해서 제가 모으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딱 이렇게 맞춰놓고 그러니까 거의 35년, 내가 35년 걸려서 저 책(고구려문물) 쓴 거예요."  잊혀진 고구려사를 복원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고구려문물을 수집하고, 독학으로 금석문을 해독해 고구려문물을 집필 해 온 대한민국의 한 인물이 있다. 바로 고구려문물연구소의 이완식 소장이다. 그는 일본과 중국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오늘도 거대한 장벽과 싸우고 있다. 그의 연구소를 찾아 직접 들어 봤다.

 

​- 우연한 인연에서 시작된 '역사의 부름'

​이완식 소장은 처음부터 역사학자의 길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어릴적 꿈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고미술 중간상이었던 집안 어른이 장래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이소장에게 '이 일 한번 해봐라' 라는 말 한마디에 시작하게 됐다. 그러면서 1973년 감정 분야에 입문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타고난 눈썰미와 적성 덕분이 있었는가 보다. 그는 3년 만에 선배들을 가르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는 연간 약 2만 점 이상의 유물을 감정하며, 한 번 본 유물의 특징을 정확히 기억해 내는 독보적인 감정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고미술 감정은 배고프다. 과거 생계를 위해 자동차 LPG 전환 장치 무역업을 병행하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은 늘 고미술에 가 있었다. 1997년부터는 고미술협회에서 본격적인 전문 감정을 시작하며 법원과 검찰의 문화재 사건을 도맡는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  이완식 고구려문물연구소장이 고구려 지석을 살펴보고 있다.

-  35년 독학으로 풀어낸 고구려문물의 기록들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1988년에 찾아왔다. 한 일본인 지인이 중국 정부로부터 공사 대금으로 대신 받은 고구려 유물 사진을 가져온 것이다. 당시 스승이었던 황수영 박사는 이를 '고구려의 귀중한 1차 자료'로 판단하며 이소장에게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한국으로 들여와야 한다'고 수집을 독려했다.  이완식 소장은 부유한 친구를 찾아서 부탁해 유물을 한국에 들여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유물을 손에 넣은 뒤에도 장벽은 높았다. 기존 사학자들조차 유물에 새겨진 글씨를 제대로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장은 스스로 길을 찾기로 결심했다. 어릴적 서당에 많이 다니며 한자를 배운 경험이 있어 그는 '강의자전'을 옆에 끼고 35년간 밤낮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해독해 나갔다. "흩어지면 사전이 찢어지는 것과 같다"라는 일념으로 시대별 기록을 이어 붙여 고구려사의 맥락을 복원해 냈다.

 

​- 유물이 증명하는 '강대국 고구려'의 실체

​이 소장의 연구 결과는 우리가 알던 역사를 송두리째 뒤흔든다. 고구려의 영토의 확장의 경우 고구려의 영토는 충북 괴산(청천강 일대)까지 뻗어 있었으며, 이곳이 신라·백제와의 접경지인 '삼계'였다는 사실이 유물을 통해 드러났다. 또한 유물을 해석하므로 고구려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광개토대왕 이전인 고국원왕 시절부터 이미 '연수'라는 고구려만의 독자 연호를 사용하며 중국과 대등한 자주국임을 나타내고 있다.  거기에 일본이 4세기 경에 한반도와 중국을 정벌하는 명분으로 삼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기까지 한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이 중국 대륙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탕진(싹 쓸어 없앰)'이라는 글자를 '만성(가득 참)'으로 조작해 다시 새김으로 인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았음을 고구려 문물이 남긴 기록을 해석해 냄으로 반박이 가능해졌다.

 

유물 배에 천추조 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얼굴은 사람, 몸은 새 모양을 한 천추조 조각은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예가 없는 모형이다. 고구려에서 도교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하나의 앞다리는 유실되었다.

 

- "역사 사기꾼" 오해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이유

중국은 1953년부터 고구려 문물 발굴하라는 지시 있었고 발굴 중에 문자가 기록된 유물은 파손 및 은폐 지시를 내리며 고구려 역사를 중국에서 없애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중국은 이후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시키려 혈안이 되어 왔다.

​그런 가운데 중국인들에 의해 몰래 숨겨진 고구려 문물을 들여 왔지만, 고구려 문물의 연구는 순탄치 않았다. 고구려 문물을 100억에 넘기라는 유혹도 받았다. 그는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도 이 소장은 굳건히 고구려의 보물을 지켜냈다. 아니 지금도 지켜내고 있었다. 반면 국내 주류 사학계는 아직도 일본 식민 사관의 영향 아래 있어, 새로운 사료인 고구려 문물 기록을 "가짜"라며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해서 이 소장은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 학자들은 이 유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며, 미국 등 해외에서 먼저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역으로 국내 학계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 민간 연구소, 보수적인 학계의 벽을 허물고 공론화의 장으로 나아가다

​이완식 소장의 6년 전 시작된 민간연구소의 심층 연구가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들었다. 단순한 개인의 탐구를 넘어 전문 연구소를 설립하고 정식 사업자 등록까지 마친 한 연구자의 뚝심이 최근 학계와 유튜브 공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고구려문물 참고자료 04 : 중국 측 전문가 자문 서한 3의 내용이다. 

-  "아무도 몰래 봐야 한다"… 권위자들이 숨죽인 이유

​연구소의 성과가 서서히 가시화되던 재작년 쯤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연구소 측이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이건무 선생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연구소의 연구 결과가 담긴 책을 접한 이분의 첫 반응은 '경탄'보다는 '경계'에 가까웠다. 박물관 출신의 관리자인 이 분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아무도 몰래 봐야 한다”며 손을 떨기까지 했다. 보수적인 학계 분위기 속에서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자칫 '가짜'로 취급받아 모함의 빌미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  "혼자 떠들면 의미 없다"… 포럼과 유튜브로 이어진 변화

​그러나 진실의 힘은 오래가지 않아 발휘됐다. 일주일 뒤, 감추기에 급급했던 이분이 먼저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권하고 싶다며 이 소장의 고구려문물 도서를 추가 요청했고, 이는 곧 연구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이건무 선생 등 원로들은 “혼자서 떠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단체를 만들어 당당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포럼 개최를 적극 권유했다. 소수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을 든든한 학문적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 연구소의 다음 행보, '공론화의 장' 열다

​이러한 응원에 힘입어 연구소는 현재 포럼 운영과 유튜브 활동을 병행하며 대중 및 전문가 그룹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단순히 유물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시각을 넘어, '연구자'의 자세로 문물의 힘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포부다. 이 소장은 “전문적인 사업자 등록과 연구소 설립은 신뢰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며, “앞으로도 숨어서 하는 연구가 아닌, 누구나 당당히 토론할 수 있는 학술적 토대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완식 소장은 ​"보이는 사실 그대로를 직시하면 된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타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할 일을 개인 한사람이 이끌고 있는 이 소장의 눈은 여전히 청년처럼 빛나고 있었다.

 

코리아 이슈저널 / 최윤옥 기자 bar00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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