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바른길을 찾는 법

코리아 이슈저널 / 기사승인 : 2026-07-30 23: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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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보완 수사권은 '사법 시스템의 최종 안전장치'다
▲칼람리스트 /(사)한국언론사협회장 주동담
중용(中庸)9장에 이르면 공자(孔子)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도덕적 경지와 그 실천의 준엄함을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비유로 역설한다.

 

"天下國家可均也(천하국가가균야), 爵祿可辭也(작록가사야), 白刃可蹈也(백인가도야)로되, 中庸不可能也(중용불가능야)니라." (천하와 국가를 평정하여 다스릴 수 있고, 높은 관직과 부귀를 단호히 사양할 수 있으며, 서슬 푸른 칼날을 맨발로 밟을 수도 있지만, 중용을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문장은 중용이 결코 범인이 닿을 수 없는 신비주의의 영역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다스리거나 명예를 포기하는 것, 혹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일생에 한두 번 굳은 결단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용은 다르다. 그것은 매 순간, 모든 상황 속에서(時中)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가장 적절하고 바른길을 선택해야 하는 '지속적인 자기 수양'의 과정이다. 공자는 한 끼 식사하는 찰나에도, 급박하게 자빠지고 엎어지는 위기의 순간에도 '()'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중용의 도(道)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잠시도 곁을 떠날 수 없는 우리 삶의 본질이자,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길이다.

 

이러한 중용의 가치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사법 시스템에 투영해보면 어떤 결론에 도달할까? 국가의 제도란 모름지기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며, 억울한 자를 만들지 않는 '()'의 상태를 견지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사권 갈등과 그로 인한 제도적 미비는 중용의 길에서 한참이나 이탈해 있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산 감사원 3급 고위 공무원의 뇌물 수수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려 13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뇌물 혐의가 수사 기관 간의 '핑퐁 게임'과 법리적 빈틈 속에서 사실상 면죄부를 받은 사건은, 우리 사회의 사법 정의가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인해 어떻게 증발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건의 경과는 참담하다. 공수처는 202311, 감사원이 수사 의뢰한 해당 간부에 대해 158,000여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이 소명 부족 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자, 공수처는 추가적인 보완 수사 없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버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검찰이 부실한 수사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며 보완 수사에 나섰으나, 이번에는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다. 현행 공수처법상 검찰이 공수처 사건을 직접 보완 수사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검찰은 공소시효에 쫓겨 증거가 명백한 29,000만 원 부분만 재판에 넘기고, 나머지 129,000만 원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겠다며 야심 차게 출범한 개혁의 산물이, 도리어 거악(巨惡)을 방류하는 '부패의 안전판'이 되어버린 '개혁의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중용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제도는 그 목적이 수단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공수처 설립의 본래 목적은 '정의 구현'이지 특정 기관의 '권한 수호'가 아니다. 현재의 시스템은 수사 기관 간의 기 싸움을 방치하고 법리적 해석의 공백을 메우지 못해 범죄자에게 도망갈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는 '수사권 조정'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범죄를 처벌한다'라는 형사사법 체계의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현상이다.

 

시퍼런 칼날을 밟는 용기보다 어려운 것이 중용이라 했다. 지금 우리 사법 당국에 필요한 것은 조직의 이기주의를 내세우는 만용이 아니라, 오직 진실과 정의만을 바라보며 제도의 결함을 메우려는 중용의 지혜다. 검사의 보완 수사권은 단순히 검찰의 권한을 강화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수사 과정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진실을 밝혀내고, 죄 있는 자를 처벌하며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사법 시스템의 최종 안전장치'. 이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면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부패 세력뿐이다.

 

중용의 첫 장에는 ()’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도야자 불가수유리야(道也者, 不可須臾離也)"라는 문구가 나온다. 공직 사회의 청렴과 사법 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잠시라도 방심하거나 제도적 허점을 방치하면 정의는 궤도를 이탈한다. 13억 원의 뇌물 혐의가 공중분해 된 것은 우리 사회가 '언제 어디서나 지켜져야 할 마땅한 도리'인 중용을 놓쳤기 때문이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도가 불완전함을 드러냈을 때,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즉각 이를 바로잡고 최선의 대안을 찾는 과정 자체가 바로 중용의 실천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보다, 명예로운 직위를 거절하는 일보다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의 과정이다.

 

정치권과 사법 당국은 이번 사건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공수처법의 미비점을 즉각 보완하여 수사 기관 간의 협조 체계를 공고히 하고, 어떤 단계에서든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부패한 공직자가 제도의 허점을 비웃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공자가 말한 중용은 결코 적당히 타협하거나 중간에 서 있는 회색론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올바른 정답'을 찾아내려는 치열한 고뇌이자 실천이다. 사법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과 공수처, 법원이 서로의 권한을 따지기 전에 '무엇이 진실인가''어떻게 정의를 세울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최선의 바른길을 찾는 노력,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시대정신이다. 이번 감사원 간부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법 체계가 중용의 가치를 회복하고, 어떤 외압이나 제도적 결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의의 보루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중용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바로 그 '바른 의지' 안에 중용은 살아 숨 쉬고 있다.

 

칼람리스트/(사)한국언론사협회 회장 주동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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