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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빛문화연구소 대표 강대업 |
그런 조선의 언로가 막히고 국가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대표적 사례는 연산군 시절 신하들의 입을 막았던 신언패(愼言牌)의 등장이었다.
신하들의 목에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쓴 패를 걸게하고 임금이 노려보고 있는데 누가 목숨을 걸고 바른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마지막 숨길을 막은 것은 끼리끼리 해먹고 소통은 부재했던 19세기 세도정치였다.
권력의 독주를 견제하던 사간원과 사관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입이 오그라들고 붓이 멈칫거리는
때부터 국가 권력의 자정 능력이 상실되고 끝내 부정부패로 나라가 망하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역사는 우리에게 엄중하게 경고한다. 권력이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듣고 비판의 목소리를 누르기 시작할 때, 그 사회는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성찰의 눈으로 바라볼 때 깊은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제도와 법의 이름을 빌려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압하거나, 권력기관에 대한 정당한 의혹 제기조차 '비방'과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으로 묶어 입을 틀어막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론의 자유로운 편집권과 오피니언 기고문마저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그동안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공든 탑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민주주의(Democracy)의 핵심은 다수의 횡포나 법을 무기로 한 독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열띤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 자체에 있다. 합법을 빙자한 법 제도가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과 시민의 입을 막는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법치(法治)가 아닌 '입법을 통한 독재'일 뿐이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생애를 다룬 에블린 홀의 전기에는 오늘날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 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
이 짧은 한 문장은 소통과 관용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내가 반대하는 의견, 내 살을 도려낼 아픈 비판일지라도 그것이 대중에게 널리 전해질 수 있는 언로를 열어주고 또한 그 말할 자유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언론의 자유는 단순히 기자의 집필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 권력의 어두운 곳을 비추고, 소외된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사회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민주주의의 숨구멍'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을 처벌하고 입을 틀어막는 '법 제정'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도 수용할 수 있는 '소통의 철학'이다. 당장 눈앞의 비판을 지운다고 해서 실정(失政)과 부패까지 가려지지 않는다.
권력에 기대어 그 입맛에 맞추려는 언론도 스스로 경계해야겠지만 입법독재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 정부와 집권정당은 역사의 교훈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의 자유를 옥죄고 비판의 길을 막아서는 각종 제도적 시도를 멈추고, 다시금 말의 길 언로를 활짝 열어 소통하는 정치를 펼치는 것만이 무너져가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 한빛문화연구소 대표 강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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