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일 진행한 단재신채호선생 90주기 행사 포스터 |
[코리아 이슈저널 = 최윤옥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이 준엄한 경고를 남기고 일제 치하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단재(丹齋) 신채호(1880~1936) 선생이 올해로 서거 90주기를 맞았다. 20일 90주년 추모를 통해 암울했던 시기, 언론과 역사를 무기로 일제에 맞섰던 그의 치열했던 삶과 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되짚어본다.
◆ 암흑을 깨운 '계몽의 붓', 언론인 신채호
구한말 단재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닌, 붓으로 싸우는 투사였다.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하며 그가 쏟아낸 논설들은 일제의 침략 야욕을 폭로하고 민중의 잠든 의식을 깨우는 죽비소리였다. 특히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하여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는 등, 그는 언론을 통해 민족의 실력을 양성해야 국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역설한 선구적 계몽운동가였다.
◆ "역사는 투쟁이다" 식민사관에 맞선 사학자
단재에게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민족 생존의 거울이었다. 그는 당시 팽배했던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의 식민사관을 배격하고 주체적인 역사관을 확립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저서 『조선상고사』를 통해 역사를 '아(我·우리)와 비아(非我·우리가 아닌 것)의 투쟁'으로 규정하며, 고구려와 발해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의 무대를 한반도 너머 만주 대륙까지 확장했다. 그의 이러한 역사 인식은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민족에게 강렬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 타협 없는 아나키스트, 무국적자로 생을 마감하다.
지식인의 삶에 안주하지 않은 그는 행동하는 혁명가였다. 1923년 의열단의 행동강령인 '조선혁명선언'을 집필, 외교론이나 준비론을 배격하고 민중에 의한 직접적인 폭력 혁명만이 독립을 쟁취할 길임을 천명했다. 말년에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에 심취하여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꿨다. 1936년 2월, 뤼순 감옥에서 뇌졸중으로 순국할 당시 그는 일제가 만든 호적에 오르기를 거부하여 법적인 '무국적자' 상태였다. 죽음 앞에서도 일제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기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 단재 신채호 선생 90주기를 맞아 사)단재신채호기념사업회는 백범기념관 11시 그의 사상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었다.
이날 행사는 충북도의회 의원의 사회, 개회식 선언, 박종관 공동대표의 약력보고, 황운하 상임대표의 환영사로 이어졌다.
기념사업회는 "이번 순국 90주기 추모식은 단재의 정신을 정치·역사·가족의 기억하라는 세축에서 조명하는 자리"라며 "대한민국의 정신적 뿌리를 다시 확인하는 공공기억의 장"이라고 말했다. 암울했던 시기, 언론과 역사를 무기로 일제에 맞섰던 그의 치열했던 삶과 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되짚어본다.
"열해를 갈고 나니 칼날은 푸르다마는 쓸 곳을 모르겠다. 춥다 한들 봄 추위니 그 추위가 며칠이랴" 이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1936년 2월21일 중국 뤼순 형무소에서 숨지기 전 남긴 절명 시의 한 부분이다.
[추모글] 90년의 침묵, 단재의 붓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
"내 목은 자를 수 있어도, 내 무릎을 꿇릴 수는 없다." 차가운 뤼순의 감옥, 한 뼘 햇살조차 허락되지 않던 그곳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이 지켜낸 것은 단순히 개인의 신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짓밟힌 강토 위에서도 결코 사멸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자존(自尊)' 그 자체였습니다. 2026년 2월 21일, 선생이 서거하신 지 90년이 되는 오늘, 우리는 다시 그 준엄한 이름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오늘, 우리는 단재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쓰고 있습니까? 현재 우리 사회는 극심한 갈등과 분열의 파고 속에 서 있습니다. 정의와 불의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눈앞의 실리와 편의를 위해 소중한 가치들이 너무나 쉽게 외면받기도 합니다. 90년 전, 세수를 할 때조차 "적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며 꼿꼿이 서서 씻었던 선생의 그 무모할 만큼 강직한 기개가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단재 선생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정의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편을 가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정신,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민족의 주체성을 잃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외풍에 흔들리고 스스로의 뿌리조차 의심받는 현 시국에서, 선생의 목소리는 죽비가 되어 우리의 잠든 정신을 깨웁니다.
선생은 펜을 칼처럼 휘둘러 일제의 심장을 겨눴고, 역사를 써 내려가며 망국의 백성들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의 국적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비록 선생은 광복의 찬란한 빛을 보지 못한 채 이슬로 사라졌으나, 선생께서 남긴 뜨거운 문장들은 9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는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생의 동상 앞에 꽃 한 송이를 놓는 것에 그쳐선 안 됩니다. 선생이 그토록 경계했던 '노예의 삶'을 거부하고,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주관과 서로를 보듬는 민족적 연대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차가운 옥중에서 선생이 꿈꾸었던 진정한 독립이자, 90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가 드려야 할 진정한 추모일 것입니다.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당신이 끝내 굽히지 않았던 그 꼿꼿한 허리로, 이제 저희가 이 시대를 당당히 버텨내겠습니다. 가난하고 곁길로 가는 후배들이 정도로 돌아와 진정한 선생의 정신을 이어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26년 2월 20일
단재 신채호 선생 서거 90주기를 기리며
추모글 / 최윤옥 [코리아 이슈저널] 편집국장
코리아 이슈저널 / 최윤옥 기자 bar0077@naver.com
[저작권자ⓒ 코리아 이슈저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